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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역사 (여행 전 간단히 알아보는 오키나와 역사) 본문
여행 전 오키나와 역사 뽀개기
아시아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오키나와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일본의 휴양지이다. 오키나와를 일본의 제주도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에게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쿄에서 오키나와행 비행기(3시간~3시간 30분)보다 인천에서 가는 비행시간(2시간 15분)이 조금 더 짧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휴양지의 이면에는 과거 전쟁의 무대였던 슬픈 역사가 서려 있다. 우리 선조들의 한도 담겨 있는 오키나와 역사를 간단히 알아보자.
오키나와는 처음부터 일본의 섬이 아니었다. 독자적인 나라인 류큐국으로 시작된다. 7세기 중국의 수나라 시기 역사서인 <수서>(隋書)에 류큐국에 대해 '바다 한가운데의 섬, 왕의 성은 환시씨이고 이름은 갈랄도이다. 언제 왕국을 세워 몇 대를 지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적혀 있다.
12세기경 농경문화가 시작되며 마을이 형성되었고, 14세기 초에는 북부의 북산(호쿠잔), 중부의 중산(츄잔), 남부의 남산(난잔)으로 3개로 나누어진 삼산시대가 100여 년 동안 유지되었다. 1429년 중산(츄잔)의 제2대 상파지왕(쇼하시왕)이 남산과 북산을 멸망시키고, 삼산을 통일했다. 그리고 슈리를 수도로 삼아 슈리성 정전에 만국진량의 종(반고쿠신료노카네, 세계를 잇는 기틀이 되는 종)을 걸었다. 지금도 슈리성 정전 앞에 설치된 복제품을 볼 수 있으며, 종에는 류큐는 남해의 아름다운 나라이며, 조선, 중국, 일본 사이에서 무역을 통해 번영하는 국가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진품은 오키나와 현립박물관에 있다. 이후 류큐국은 조선, 명나라, 일본 등과의 교역을 통해 국력을 키우게 된다.
1609년 일본의 사쓰마번(사츠마한)이 침공했고 일본에 조공을 시작했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로 왕조가 바뀌었으나 일본과 청나라 양쪽에 조공을 보내며 류큐국의 독자성은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1879년 일본은 무력으로 류큐국과 청나라의 조공 관계를 끊고, 일본의 오키나와현으로 편입시켰다. 류큐국의 마지막 왕인 상태왕(쇼타이왕)은 일본 메이지 정부에 의해 후작으로 강등, 강제로 도쿄로 이주당한다. 하루 사이에 류큐인에서 일본인이 된 일부는 무력으로 통치하는 일본의 경찰과 군대를 피해 청나라 등에서 독립운동을 벌였다. 마치 조선의 역사와 닮아 있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 초기부터 대만부터 시작해 조선, 중국의 동북 3성도 점령하며 결국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오키나와는 1945년 초까지 크게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다가 1945년 4월 1일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 83일간 전투를 치루며 전역이 쑥대밭이 되었다. 또한 일본군은 미군이 상륙하기 전인 3월 말부터 오키나와의 민간인들에게 자결을 강요했다. 민간인들에게 수류탄을 나누어 주거나 전투 막바지에 민간인을 직접 학살하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 양측 사망자만 거의 20만 명이었다. 그중 민간인 사망자가 9만 4천 명에 달한다. 그리고 이 중 무려 1만 명가량이 조선인으로 추정된다. 조선인 대부분이 강제 징용된 노동자와 여성들이다.
1972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남부에 평화기념관을 만들었으나, 일본이 희생자라는 인상을 심는 데 주력하여 오키나와 현지인과 한국인의 시선이 고울 수가 없다. 아무튼 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염원하는 마음은 똑같아야 할 것이다. 오키나와 평화기념관 안에 한국인 위령탑도 있으나 상대적으로 다른 곳에 비해 재단이 쓸쓸하다. 관광 중 들리게 된다면 조그마한 과자라도 올려보자.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항복한 후 미국은 오키나와를 27년간 통치했고, 1972년 일본에 반환된다.
지금까지 류큐국이 일본이었다가 미국이었다가 다시 일본이 된 이야기를 알아보았다. 류큐성에서 과거 일본에 묻혀버린 류큐국의 모습을 살펴보고, 오키나와의 햄버거, 스테이크와 현지 음식인 타코라이스가 왜 유명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역사를 되짚어 보자. 오키나와 중부에 위치한 아메리칸빌리지 또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결과물이다.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자연에 묻힌 비극적인 역사를 제대로 마주 알고 여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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